아이를 위한 공간이라 하면 보통 우리는 ‘안전’을 떠올린다. 키즈카페, 어린이집, 학교 앞, 놀이터 인근 등에는 아이들이 활동하는 만큼 그 주변도 철저히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키즈존 앞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통사고 발생 빈도는 오히려 높은 수준을 보인다. 특히 스쿨존 외에도 키즈존, 놀이방, 소아청소년과, 실내 놀이터 등 아이들이 자주 찾는 공간 앞 도로에서는 교통 법규 미준수와 인프라 부족이 겹쳐 아동 보행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 글은 ‘교통 법규가 있음에도 왜 아이는 다치는가?’라는 물음을 중심에 두고, 키즈존 인근 도로의 구조적 문제점, 법규의 실효성, 실제 사고 사례 및 정책적 대안을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키즈존 주변 교통사고 실태와 문제의 본질
우선 키즈존 주변 교통사고의 심각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스쿨존 외 어린이 교통사고의 약 60%가 ‘학원가·놀이시설·병원 인근’에서 발생했으며, 이 중 상당수가 키즈존 주변으로 분류된다. 특히 주말과 오후 2시~6시 사이, 보호자 동반 없이 이동하는 초등 저학년 아동이 사고의 주요 피해자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교통 법규의 사각지대에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과 ‘민식이법’은 초등학교 및 유치원 중심의 스쿨존에만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신호기 설치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민간 키즈존이나 실내 놀이터, 소아청소년과 앞 도로는 해당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즉, 같은 아동 보호 공간임에도 법적 보호 수준은 극명히 다르다.
또한, 일부 키즈존 인근 도로는 이중 주차나 불법 주·정차가 일상화된 상태이며, 어린이 통행 시야 확보가 어려운 구조임에도 아무런 차단 시설 없이 차량과 보행자가 혼재되어 있다. 특히 좁은 골목에 위치한 키즈카페나 놀이방은 차량 회전이 빈번하고 속도 감속 유도 시설이 없어 충돌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결국 키즈존은 그 명칭과는 다르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아동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법규가 있음에도 아이가 다치는 아이러니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교통 법규가 키즈존에 미치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
법은 있지만,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규제 체계의 시설 구분 기준의 협소함에서 시작된다. ‘스쿨존’은 초등학교, 유치원, 보육시설을 중심으로 도로 반경 300m 내외를 지정해 각종 규제를 적용하지만, 키즈존은 ‘일반 영업장’으로 분류되어 있다. 즉, 교육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교통안전 인프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키즈카페 앞 도로는 연간 1000명 이상 아이가 다녀가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속도 제한 표시, 횡단보도, 감속 방지턱조차 설치되지 않았다. 이 구역은 주택가와 식당가 사이 도로로 분류되어 있어, 시청 교통과의 ‘우선 개선 지역’ 목록에도 오르지 못했다.
또한, 법적으로 스쿨존에는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하여 ‘신호기, CCTV, 무단횡단 방지 펜스, 인지 향상 바닥 도색’ 등을 설치할 수 있으나, 키즈존에는 이 같은 예산이 할당되지 않기 때문에 민간이 자체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키즈존은 임대 매장 또는 다중 상가의 일부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설주가 외부 인프라를 직접 설치하거나 행정 요청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처럼 법률상 정의의 협소함, 예산 배정 기준의 모호함, 민간 운영 공간에 대한 정책 사각지대가 키즈존 교통안전 인프라 부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사고 사례와 보호자의 현실 인식
경기도 부천시의 한 키즈존 인근 도로에서는 2023년 4월, 키즈카페를 나와 도보로 이동 중이던 6세 아동이 이중 주차 차량 사이에서 뛰어나오는 순간 우회전 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도로에는 횡단보도, 반사경, 시선 유도선 등 기본적인 안전 시설이 전혀 없었고, 차량 운전자는 “아이를 전혀 볼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사고 이후 해당 지역 커뮤니티에는 “왜 스쿨존은 있는데 키즈존은 없느냐”는 항의 글이 빗발쳤으며, 실제로 해당 키즈카페는 1일 평균 방문 아동 수가 200명을 넘는 중대형 시설이었다. 그러나 시청은 "법적으로 키즈존은 지정 대상이 아니다"라며 속도 감속 시설 설치 요청을 기각했다.
보호자 A 씨는 “아이를 키우며 처음 키즈존 사고가 제일 건수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예방해 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이 현실과 괴리된 채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부모의 불신이 축적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특히 도심 상업지역, 골목 상권, 병원 밀집 지역 내 키즈존은 법적 사각지대에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으며, 사고가 나야만 언론 보도나 행정조치가 뒤따르는 ‘사후 대응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키즈존 교통 안전 강화를 위한 정책 제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 스쿨존과는 별도로 ‘키즈존 도로 안전 구역’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통해 민간 기반 아동 이용 시설 주변 도로도 법적 보호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다음은 정책적 실현을 위한 구체적 제언이다.
첫째, ‘아동 이용 집객 시설 도로 보호법’ 제정이 필요하다. 민간 키즈카페, 놀이방, 소아청소년과, 어린이전문병원, 체험센터 등 1일 평균 방문 아동이 일정 수 이상인 시설을 교통 보호 대상 시설로 지정하고, 도로교통법 또는 관련 조례에서 속도 제한, CCTV, 감속 유도 시설 설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실시간 민원 기반 교통안전 평가 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현재는 교통안전 인프라 개선이 행정의 계획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보호자와 시민이 앱 또는 웹을 통해 사고 위험 구간을 제보하고, 실제 이용 데이터(유동 인구, 어린이 방문 수)를 기반으로 시급성 평가를 진행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훨씬 효율적인 안전 행정이 가능하다.
셋째, 임대시설 내 키즈존의 경우에도 건물 관리주체 또는 운영자와 지자체 간 협약을 통해 교통안전 시설 설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컨대, 건물 외부 인도에 횡단보도, 반사경, 볼라드 설치를 공동 비용 분담 방식으로 추진하거나, 시 예산을 지원하는 대신 일정 기간 시설의 안전관리 의무를 민간이 부담하는 상호협약 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
넷째, 어린이 대상 안전교육 콘텐츠의 ‘키즈존 특화’ 버전 개발도 병행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어린이 교통 교육은 스쿨존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사고 위험이 더 높은 키즈존 환경에서의 행동 요령, 도로 횡단 방식, 차량 사각지대 이해 등을 시각적 교구와 함께 교육하는 실전형 콘텐츠 개발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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