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을 위한 키즈존
2023년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가정 수는 약 40만 가구를 넘어섰고, 그중 약 15만 명 이상이 12세 이하의 자녀를 두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은 더 이상 소수의 특수한 집단이 아니다. 이처럼 점점 더 많은 다문화 아동이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또래들과 어울리며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키즈존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이들에게 쉽지 않다. 키즈존의 접근성은 물리적 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 정보 부족, 서비스 제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다문화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은 키즈존 이용 과정에서 여러 장벽을 경험한다. 본 글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키즈존 접근성의 현재, 언어 지원 시스템의 도입 사례, 국내외 공공정책 및 민간 차원의 실천 모델, 그리고 향후 개선 방향까지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다문화 가정이 키즈존 이용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
언어 정보의 부재
‘정보의 전달’이 다문화 가정의 가장 큰 장벽이 된다. 특히 어린이 놀이시설을 처음 접하는 보호자들은 이용 규칙, 예약 방법, 안전 수칙, 비용 안내 등에서 기본적인 이해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키즈존 웹사이트, 안내문, 현장 직원 설명은 한국어로만 제공되며, 번역된 안내 자료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키즈존을 ‘알고도 가지 못하는 공간’으로 여기는 보호자들이 많다.
문화적 이해 부족
일부 다문화 가정 부모들은 아이의 놀이 습관, 소음에 대한 인식, 타인과의 놀이 규칙 등에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많은 키즈존은 이를 ‘예외적 행동’으로 간주하며 명시적 제재나 시선적 배제를 유도한다. 실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보고서(2022)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보호자의 58%가 “놀이 공간에서 다른 보호자나 운영자에게 무시나 불편한 시선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비용·예약 시스템 장벽
온라인 예약, 사전 결제, 회원 가입 등 디지털 중심의 예약 시스템은 다문화 가정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다. 특히 저소득 이주 가정의 경우, 고비용 민간 키즈존 이용이 어려워 무료 또는 저비용 공공 키즈존에 대한 정보 접근이 절실하다.
국내 공공 키즈존의 다문화 접근성 현황
최근 들어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문화 아동의 놀이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부 키즈존에서 다국어 안내체계와 다문화 특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 대표 사례
서울시 ‘글로벌 패밀리 키즈카페’ (은평구)
- 한국어,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안내문 제공
- 다문화 가정 대상 주말 무료 이용권 발급
- 매월 다문화 놀이 활동(의상 체험, 동화 낭독 등) 운영
경기 김포시 ‘다누리 키즈놀이터’
- 이주배경 아동과 보호자 전용 이용 시간 운영
- 키즈존 내 이중언어 동화 프로그램 운영
- 놀이 코너마다 간단한 다국어 표현 스티커 부착(예: 미끄럼틀 앞에 “Slide/滑梯/미끄럼틀”)
이와 같은 사례는 단순 시설 개방을 넘어서, 다문화 아동이 ‘환영받고 있다’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키즈존 언어 지원 시스템의 실제 적용 사례
다국어 음성 가이드
서울시 용산구 ‘아리랑 글로벌 키즈파크’는 키오스크 기반의 다국어 음성 안내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우즈베크어 등으로 음성 안내를 제공하며, 보호자가 언어 버튼을 누르면 시설 설명, 안전 수칙, 놀이법 안내가 자동으로 재생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글자를 읽기 어려운 성인 보호자나 조부모에게 특히 유용하며, 실제 이용자 조사 결과 만족도 92% 이상을 기록했다.
이중언어 도우미 배치
부산시 영도구의 ‘다문화 통합 놀이센터’는 이중언어 가능한 상담 인력을 배치해 예약, 현장 이용, 분쟁 조정 등에서 실시간 통역을 제공한다. 이는 외국인 보호자의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 아이에게 보다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외 선진국의 다문화 키즈존 운영 전략
캐나다 토론토시 ‘Inclusive Kids Place’
- 모든 안내문과 음성 안내를 8개 언어로 제공
- 문화별 놀이 콘텐츠 제공: 아프리카 드럼놀이, 아랍어 동화 읽기 등
- 분기별로 ‘다문화 가족의 날’ 개최 → 부모와 아이가 함께 문화 공유
독일 베를린 ‘Kinderwelt Multikulti Zone’
- 전 세계 유아 인형 전시, 전통 의상 체험 존 설치
- “언어가 달라도 놀이는 통한다”는 철학 아래, 놀이 중심의 비언어적 상호작용 유도
- 키즈존 직원 중 50% 이상이 이주 배경을 가진 다국어 화자
이러한 운영 사례는 키즈존이 단순한 놀이 공간을 넘어, 다문화 이해와 언어 통합의 현장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키즈존 향후 개선을 위한 4가지 전략적 제안
① 공공 키즈존 내 다국어 안내문 의무화
지자체 및 문화센터가 운영하는 키즈존은 한국어 외 최소 3개 언어로 안내 자료 제공을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베트남어, 중국어, 러시아어, 우즈베크어는 주요 이주 가정의 언어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② 키즈존 예약 플랫폼의 다국어 지원 확대
민간 키즈존은 자사 웹사이트 또는 앱 내에서 기본적인 예약 절차(날짜 선택, 인원 입력, 결제 등)를 다국어로 구현해야 하며, 최소한 ‘언어 선택 후 접근 가능한 요약 페이지’라도 제공해야 한다.
③ 다문화 가정 우대 이용 프로그램 도입
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다문화 가족 전용 시간대 운영, 또는 할인/무료 혜택 제공을 통해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키즈존 참여율을 높이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④ 이중언어 활동 콘텐츠 개발
단순 통역을 넘어서, 아이의 언어 발달을 돕는 한국어-모국어 병행 놀이 콘텐츠(예: 한글-베트남어 그림카드, 이중언어 동요 영상 등)를 개발해 상호 언어 감수성과 가족 내 소통을 동시에 도울 수 있다.
‘누구나 놀 수 있는 키즈존’은 설계가 아니라 철학에서 시작된다
다문화 가정 아동에게 키즈존은 단지 뛰어노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통합의 첫 현장이자, 언어와 감정의 접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이 중심’의 키즈존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은 국적과 언어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가 동등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키즈존은 아이들의 세상이다. 하지만 그 세상이 모든 아이에게 열려 있지는 않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부모가 낯선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면, 아이는 놀이의 시작선에 서보기도 전에 뒤처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포용의 구조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