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존

초등학교 방과후 활동, 키즈존이 아이의 사회성을 바꾼다

yusymphony 2025. 7. 3. 03:34

방과후 3시. 학교는 끝났지만 부모의 퇴근 시간은 여전히 한참 남았다.
이 사이 시간대는 ‘돌봄의 공백 시간’이자, 아이에게는 사회성을 형성하는 결정적 시간이다.
최근에는 이 공백 시간을 메우는 공간으로 ‘초등 키즈존’이 주목받고 있다.

 

키즈존은 단순히 놀이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의 통제 밖에서 또래와 어울리며 감정 조절, 협업, 갈등 해결 등의 사회성 능력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

 

『아이의 사회성, 부모의 말에서 결정된다』(류한석, 2020)에서는 “사회성은 단순히 친구를 사귀는 능력이 아니라, 감정 조절, 공감, 타협, 소속감까지 포함하는 다차원적 정서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특히 초등 저학년 시기에 이런 사회성이 급격히 형성된다고 강조한다.

 

즉, 방과후 키즈존은 아이가 일상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사회성을 훈련할 수 있는 생활 기반의 교육 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실제 키즈존 운영 사례와 사회성 발달 이론을 바탕으로 초등 아이의 사회성이 키즈존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탐색해본다.

키즈존 초등학교 방과후 활동

초등 저학년, 사회성이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

 

사회성(social competence)은 유아기부터 형성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7~10세)은 또래 관계를 통해 사회 규범과 역할을 이해하는 핵심 시기로 간주된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이 시기의 아동은 ‘구체적 조작기’에 속하며, 타인의 관점을 인식하고 자기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려는 능력이 빠르게 성장한다.

 

또한 비고츠키(Vygotsky)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발달』에서 “아동은 성인 지식의 단순 수용자가 아니라, 또래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능동적으로 사회 규칙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이는 곧 사회성은 교실보다 교실 밖에서 더 빠르게, 더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방과후 활동 시간은 교사도, 부모도 없는 시간이다. 따라서 이 시기 아이에게는 사회적 자율성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키즈존은 이런 의미에서 ‘놀이 기반의 사회 경험 공간’으로 기능하며, 또래 중심의 소집단 경험을 통해 비지시적, 체험적 사회성 학습이 가능해진다.

 

실제 사례: 키즈존에서 사회성이 달라진 아이들

사례 1: ‘혼자서만 놀던 아이’가 리더가 된 키즈존

서울 은평구의 A초등학교 2학년 민우(가명)는 평소 학교에서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혼자 앉아 그림만 그리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부모는 퇴근 시간이 늦어 방과후 돌봄 대안으로 주 3회 키즈존에 보내기 시작했다.

 

이 키즈존은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이 팀으로 역할놀이, 보드게임, 간단한 미션 활동을 하는 공간이었다. 초기에는 민우가 방관자로 남아 있었지만, 점차 특정 활동(그림 그리기)에서 리더 역할을 하게 되었고, 다른 아이들과의 협업 중 발언 빈도가 늘어났다.

 

6개월 후 담임교사는 “수업 중 손을 들고 발표하는 일이 많아졌고, 친구와 조를 짤 때도 자신이 먼저 다가가는 행동을 보인다”고 말했다. 보호자는 “이 아이가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상황과 공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키즈존이 사회성 회복의 기회가 됐음을 인정했다.

 

사례 2: ‘힘이 센 아이’의 조절력 형성

수원시의 한 키즈존에서는 초등 3학년 남아가 놀이 중 자주 친구를 툭툭 밀고, 순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운영자는 이 아이를 단순 ‘문제아’로 분류하지 않고, 역할 교체형 협업 프로그램에 반복적으로 참여시켰다.

 

예를 들어 ‘보물찾기 미션’에서 이 아이는 리더가 아닌 ‘기록자’ 역할을 맡아야 했고, 이는 처음엔 거부감을 유발했지만 점차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보호자는 “학교에서는 제어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키즈존에서는 역할을 바꾸면서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운영자는 “놀이 중 상황조절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역할 경험 속에서 체화된다”며, 자유롭지만 설계된 놀이 환경이 아이의 사회적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키즈존 사회성 효과는 단순 친화성 향상이 아니다

 

‘사회성이 좋아졌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아이가 사교성이 늘었다, 말을 잘한다는 의미로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아동발달심리』(한혜영 외, 2021)는 진짜 사회성이란 단순한 외향성과는 다르며, 다음과 같은 복합 능력으로 구성된다고 정의한다.

  • 공감 능력: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능력
  • 자기조절력: 욕구를 통제하고 충동을 관리하는 능력
  • 협상과 타협: 갈등 상황에서 언어적 해결을 시도하는 능력
  • 역할 이해: 집단 속 자신의 위치와 타인의 역할을 파악하는 능력
  • 도움 요청 능력: 문제 상황에서 스스로 요청하고 지원을 받는 능력

이러한 능력은 일방적인 지시나 주입식 교육으로는 강화되기 어렵다. 반면, 초등 키즈존에서는 아이들끼리의 반복적인 상호작용, 상황 중심의 놀이 경험, 권한이 분산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훈련된다.

특히 자기보다 어린 아이와의 놀이, 나이 많은 아이와의 활동, 모르는 친구와의 즉석 팀 구성 등은 학교 교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결국 학교 내 사회성 부족을 키즈존이 보완해주는 기능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부모의 역할: 키즈존 이후의 대화가 사회성을 확장시킨다

 

아이의 사회성은 공간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 후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리되고 구조화된다. 아이가 키즈존에서 겪은 일들을 단순히 흘려듣지 않고, 보호자가 적절한 언어로 정리해주면 경험이 의미로 전환되며, 사회적 기술로 내면화된다.

 

『부모의 질문이 아이의 사회성을 결정한다』(서형숙, 2018)는 아이가 겪은 사소한 갈등도 질문을 통해 확장하면 좋은 사회성 학습 소재가 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이 효과적이다.

  • “그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 “너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
  • “다음에 그런 상황이 생기면 어떤 말을 해보면 좋을까?”
  • “그 친구와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니?”

이처럼 키즈존에서의 경험은 끝난 후 대화와 성찰이라는 가정 내 확장 과정을 통해 더 깊은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이 아닌, 사회적 관계를 건강하게 맺고 지속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필수적이다.

 

초등학생의 사회성은 시험 점수나 독서량처럼 숫자로 바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와 놀다가 서로를 배려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조심스럽게 사과할 수 있으며, 낯선 친구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이의 정서 발달과 성숙의 진짜 신호일 것이다.

 

초등 키즈존은 교실 밖, 부모 품 밖에서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방과후 이 2~3시간의 경험이 쌓이면, 그 아이는 미래의 학교, 사회, 관계 속에서 더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