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노키즈존, 한국과 다른 아동 배려 정책 비교
2025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노키즈존(No Kids Zone)’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카페, 식당, 미용실, 일부 병원과 공유오피스에까지 아이의 출입을 제한하는 안내문이 붙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쟁은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가 과연 한국에만 존재하는 현상인지, 혹은 전 세계적인 추세인지에 대한 질문은 비교적 드물게 다뤄졌다.
아이를 특정 공간에서 제한한다는 것은 단순히 운영자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아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공간적 권리를 허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단면이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노키즈존이 해외에서는 어떻게 논의되고 있으며, 한국과 어떤 점에서 다르게 접근되고 있는지를 사례와 정책, 연구자료를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아동 권리의 보장, 사회적 공존, 보호자에 대한 인식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면서, 보다 균형 있는 시선을 제안하는 콘텐츠로 구성했다.
미국과 유럽, ‘노키즈존’이 존재하긴 하지만
우선 미국과 유럽에서도 ‘노키즈존’이라는 개념 자체는 존재한다. 다만 그 성격과 범위는 한국과는 다소 다르다.
미국에서는 ‘Adults Only’ 또는 ‘Kid-Free’라는 명칭으로 특정 고급 레스토랑이나 럭셔리 호텔, 항공사 일부 좌석 구역에서 제한적 적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명확하게 사전 고지된 고가 서비스의 일부로 분류되며, 공공 공간이나 일반 상업시설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Per Se나 Eleven Madison Park 등은 8세 이하 아동의 입장을 제한하는 규정을 운영하지만, 이는 드레스 코드, 예약제, 코스 구성 등의 고급 경험의 일환으로 간주되며, 사회적으로 큰 반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유럽에서는 노키즈존이라는 용어 자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공공 영역에서는 아동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정책적 기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는 ‘아이 없는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권리 침해로 간주하며, 자영업자도 아동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강한 권리 보장 조항을 갖고 있다.
스웨덴의 「어린이 인권 헌장」은 공공장소 및 상업공간에서의 아동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며, 식당에서 아동의 소란이 발생했을 때, 보호자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는 있어도 아동의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노키즈존 운영 방식: 한국과 닮은 듯 다른 방식
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양상이 일부 존재한다. 일본에서도 최근 몇 년간 ‘노키즈존’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며, 특히 료칸(전통 숙박업소), 프라이빗 다이닝, 고급 스파 시설 등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노키즈존이라는 문구 대신 ‘조용한 공간을 지향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라는 간접적인 문구를 활용하며,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본 와카야마현의 한 료칸은 홈페이지에 “12세 이하 어린이는 동반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으면서도, 동시에 가족용 전용 객실과 키즈서비스 객실을 별도 마련하여 부모 선택권을 제공한다. 이처럼 일본은 노키즈존을 도입하더라도 대체 공간과 병행 운영을 하며, 갈등 방지에 주력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싱가포르의 경우도 유사하다. 도시계획상 고밀도 인구 환경 속에서도 아동 공간은 매우 전략적으로 분산되어 있다. 일부 미쉐린 레스토랑이나 프라이빗 멤버십 라운지에서는 아이를 제한하지만, 동시에 쇼핑몰과 공공시설 내 ‘패밀리 존(Family Zone)’을 함께 운영함으로써 아동의 공간 권리를 보장한다. 즉, 제한이 있더라도 대체 공간 또는 병렬적 선택지가 항상 주어지는 방식이다.
한국의 노키즈존의 사회적 갈등
한국의 노키즈존은 단지 운영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감정의 대립을 만들어냈다.
‘아이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소비자의 피로감과 ‘아이와 함께할 공간이 없다’는 보호자의 절박함이 충돌하면서 노키즈존이 특정 계층 간 갈등, 세대 간 가치 충돌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0.68)을 기록 중이며, 동시에 ‘육아 공동체 지원지수’는 하위권에 속한다. 이는 사회가 아이를 기르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동 인권에 대한 제도적 보호는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이며, 보호자 역시 아이가 소란을 피울 경우 죄의식과 위축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은 공공공간의 ‘정숙’과 ‘질서’에 대한 규범적 압박이 강한 사회이기도 하다.
아이가 뛰거나 소리를 내면 “남에게 폐를 끼친다”는 시선이 따르며, 공간을 함께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문화가 노키즈존이라는 선택지를 사회적 정당화로 허용하게 만들었다.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공존의 설계’ – 제도와 문화의 균형
해외의 사례를 보면, 노키즈존이 무조건 잘못되었거나, 아이가 무조건 보호받아야 한다는 일방적 논리가 아닌 공존을 위한 문화적 설계와 정책적 안전망이 존재한다.
① 유럽: 아동을 사회의 ‘권리 주체’로 인식
- 북유럽은 아동을 단순한 동반자가 아닌, 공공의 주체로 인정
- 공공 공간에서의 아동 소음은 규제 대상이 아니라 보호 대상
- ‘아이 친화 도시(CFC: Child Friendly City)’ 정책으로 설계, 행정, 권리 보장까지 통합적 운영
② 미국: 명확한 공지와 상위 가격 정책을 통한 구분 운영
- 고급 서비스에서 아동 제한이 있을 경우 사전 예약 시스템으로 갈등 예방
- 대신 공공 공간이나 일반 상점은 아동 접근에 제한을 두지 않음
- 상업적 공간에서도 ‘아동 제한의 대가’를 소비자가 선택하게 하는 방식
③ 일본·싱가포르: 대체 공간을 병행해 보호자와 비보호자 모두를 고려
- 노키즈존을 시행하더라도 ‘패밀리존’, ‘베이비존’ 등 대체 공간 제공 의무화
- 안내문구 자체가 공격적이지 않고 정중한 표현으로 공감 유도
- 아이와 보호자가 사회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 중심 접근
‘아이 없는 공간’은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배제당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차별의 시작이 된다. 해외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아동을 배제하기보다, 조화롭게 설계하고 대체 공간을 제공하며,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공을 만드는 것이 진짜 성숙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 역시 노키즈존이라는 한 가지 수단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공간과 제도, 인식의 삼박자를 정비하는 ‘공존형 설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